<애드센스> '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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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금으로 장식을 하였던 잉카제국은 현재 몇몇 금조각상만을 남겨둔 채 어디로 사라졌는가. 15세기 황금도시를 찾아 출발한 스페인의 피사로가 잉카문명을 발견하면서 드디어 간절히 원하던 피사로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피사로와 그 부하들은 200명이 되지 않는 인원으로 1000만 명이나 되는 잉카를 정복하게 되고 그 결과 수많은 금은보화를 쟁취하게 된다. 당시 잉카제국의 13대 황제였던 아타우알파는 처음 피사로의 부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의사소통이 안되었던 탓에 많은 피를 흘리고서야 그들이 원하는 것이 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아타우알파 황제는 피사로와 협상을 하게 되면서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금을 피사로와 그 부하들에게 보여주는데 피사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금의 양에 입을 다물수 없을 정도였다. 방하나를 가득 채 오고도 남을 정도의 금의 양이 그들의 앞에.. 더보기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여전히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뜨겁고 용감하고 슬기로웠던 한 영웅의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새벽 38도 분계선에서 울린 총소리는 3년간 한반도에 끔찍한 전쟁으로 탈바꿈하였다. 오늘은 3년간의 6·25 전쟁 중에서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하다가 간 한 영웅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전쟁의 아픔을 기억이나 할까 싶을 만큼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들 가슴속에 남아있는 그리고 분단의 아픔은 해결되지 않은 응어리로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한 마리의 말과 관련된 이야기다. ‘아침해’라는 이름을 가진 말은 신장 142cm 체중 410kg 나가는 암컷 말이었다. 1949년 7월에 태어나 1968년 5월 1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아침해’는 불가능한 미션을 해냈기에 미합중국 해병대는 그.. 더보기
치열했던 봉오동 전투가 있은 후 얼마 뒤 다시 한번 대전투가 벌어지는데... 청산리 전투의 승리와 역사적 의미 5일간의 치열했던 ‘청산리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얼마 전 100주년을 맞은 홍범도 장군 지휘 하에 일본군을 무찌른 유해진 류준열 주연의 ‘봉오동 전투’ 영화가 관객 수 500만을 동원하면서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봉오동 전투가 있은 후 같은 해 중국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에서 있었던 ’청산리 전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시간은 1905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일제는 러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경복궁을 포위하고 황제와 대신들을 겁박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협상 조약) 을사늑약의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1조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 대.. 더보기
6월6일 현충일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면서 ... 6월 6일은 국립 현충일입니다. 오늘은 현충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국립 현충일은 자신을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전몰한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처음 지금의 현충원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조국의 광복과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여 오던 중 북한 인민군의 국지적 도발과 각 지구의 공비토벌작전으로 전사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서울 장충사에 안치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전사자의 수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육군에서 묘지 설치문제가 논의되었고 1949년 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서 서울 근교에 묘지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되면서 설치 문제는 중단되었었다. 계속되는 전쟁의 포화는 전사자의 수를 계속 증가시켰고 육군은 다시 묘지 설치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다양한 후보지를 찾게 되는데 .. 더보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기억을 되짚어보며... 얼마 전 위안부 할머니 중 한 분이신 이용수 할머니께서 정의연대(정의 기억 연대) 윤미향 전 대표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면서 뜨거워진 위안부 관련하여 역사 사실을 한번 되짚어 보자 현재 한국에 위안부 할머니는 총 17분이 살아계신다.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고통과 지옥 속에서 살아남으신 분도 얼마 남지 않아 기억 속에만 남을 상황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한분이 계신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이 시작되면서 일본군 위안부가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배봉기 할머니의 이야기다. (1914~1991) 배봉기 할머니는 1975년 처음 일본 교도통신을 통해 자신의 일본의 위안부임을 밝혔었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일본 헌병에 끌려가 성노예가 된.. 더보기
21년 만에 사라지는 공인인증서 과연 대안책은? 금융 실명제는 1993년 우리나라의 모든 금융 거래를 금융거래 당사자 간 실제 본인의 이름으로 하도록 도입한 제도이다. 개인 금융 실명제가 도입되면서 기존의 대포 통장으로 많은 금융 사기 및 문제점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1999년부터 금융실명제를 온라인증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공인인증서이다. 공인인증서는 1999년 인터넷 활용 초기 정부와 금융기관 홈페이지의 본인 인증용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아직도 정부 관련 사이트에서 활용되고 있어 생체인증이나 간편인증이 보편화된 최근까지도 발급 건수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발급 과정이 복잡하고 PC와 스마트폰 간 호환이 불편한 데다, 휴대용 저장장치를 들고 다녀야 하는 등 많은 불편함 때문에 이용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다양한 문제점들이 공.. 더보기
2020년 전염병의 대 유행 '코로나 19' 처음이었을까... 전염병 대 유행 일명 흑사병으로 잘 알려진 14세기 유럽 인구 30%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전염병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패스트 균의 발견 1894년 프랑스 세균학자 알렉상드르 예르생(1863~1943)과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타 자토 시바사부로가 동시 발견하였다. 흑사병 이론 흑사병의 원인균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는 보통의 경우 토양 속 서식하며 간혹 설치류와 인간의 체내에 들어와 기생하면서 전파되어 흑사병을 일으킨다. 미셀 드란코르가 흑사병의 발생 모델을 정립한 바 있다.. 야생화된 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개들은 벼룩에 의해 감염되거나 감염된 시체를 먹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전염되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되어 비단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해 1343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