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 38도 분계선에서 울린 총소리는
3년간 한반도에
끔찍한 전쟁으로 탈바꿈하였다.
오늘은 3년간의 6·25 전쟁 중에서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하다가
간 한 영웅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전쟁의 아픔을 기억이나 할까
싶을 만큼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들 가슴속에 남아있는
그리고 분단의 아픔은 해결되지 않은 응어리로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한 마리의 말과 관련된 이야기다.
‘아침해’라는 이름을 가진 말은
신장 142cm 체중 410kg 나가는
암컷 말이었다.
1949년 7월에 태어나
1968년 5월 1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아침해’는 불가능한 미션을 해냈기에
미합중국 해병대는 그녀에게 하사(E-6) 계급과
‘레클리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녀가 이렇게 말로 태어나서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6·25 전쟁 당시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군마로서 탄약과 무기를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1953년 3월 전쟁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지만
여전히 격전지는
위험천만한 곳들이었다.
특히 그녀가 활동한
네바다 전초(現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전투는
중공군을 격퇴하기 위한 방어 전투였다.
이 전투로 사망한 중공군은 1300여 명이며
美 해병대 118명 전사자와 800여명의
부상자와 100명에 가까운 실종자를
내면서 피로 지킨 전투였다.
이때 5일간 ‘아침해’는
386회를 무거운 탄약과 포탄을
등에 메고 날랐으며
이동한 거리는 56km 였다.
말없이 묵묵히 무기를 가져다준
‘아침해’를 보면서 美 해병대는
사기가 북돋았으며
전투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무모할 수밖에 없는 ‘아침해’에게
美 해병대는 ‘레클리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전쟁이 끝난 후 레클리스는 미 해병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리고 1954년 미 해병대에 입대 후
1959년 전역하였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두려움을 잊은 채
본인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레클리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더 유명하다.
‘레클리스’가 사망하고
美 해병대는 그녀가 사망한 마구간 옆에
동상을 만들어 주어
현재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분단의 아픈 역사 속에서
포탄이 빗발치는 고지를 향해 뛰어야만 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모두가 희망하는
통일의 그날이 하루빨리
우리 곁에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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