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9 - [철학/동양 철학] - 조선 500년 왕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성리학!
조선 성리학은 조선의 500년을
통하는데 주류를 이루었다는
측면에서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조선을 공부하다 보면
사회, 경제, 문화, 등등 그 어떤 부분에서도
성리학을 배제하고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성리학이
어떻게 조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보자
조선을 건국하는데
고려 말 불교의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그 자리를 안향이 원나라에서 베껴온
유학을 통해 전해지게 된다.
하지만 고려 말 귀족들의 부정부패와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은
고려의 변화를 요구하였고
이성계는 칼을 통한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조선의 건국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조선을 건국하는데
정신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는
항상 반대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유명한 정몽주이다.
둘은 고려시대 비슷한 시기
너무나도 다른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하였고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정도전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쪽으로 귀결되었고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한 정몽주는
유교를 받아 드리면서도
급진적인 변화는 지양하였다.
둘의 이념적 대립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각해져 갔고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의 손을 잡고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결국 정몽주를 따르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혀버리고 만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정도전을 지지하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일조한 인물들은 공신이 되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게 되었고,
정몽주를 지지하던 이들은 작은 촌락에서 서원을 통해
조용히 공부를 하면서 지냈으며 조선시대 사림파 뿌리가 된다.
조선정치사에서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는
계유정난을 일으키면서
이때 세조를 지지했던 인물들이
공신이 되면서 모든 권력을
잡게 되면서 시작되게 된다.
세조의 손자인 9대 왕 성종이 즉위하면서
할아버지인 세조의 지지세력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지금까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던
사림파를 끌어드리게 되고
이때부터 기존 정치세력이었던 훈구파와
왕의 힘을 얻은 사림파의 대립이 시작된다.
10대 왕인 연산군에 의해
훈구파와 사람파가 사화를 거치면서
훈구파는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고
이때부터 사림파 끼리
다시 한번 대립이 형성되게 되고
제 15대 왕인 선조 때부터
붕당정치로 제2막을 열게 된다.
이러한 이념적 분당 싸움은
조선의 패망과 함께 종식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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