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조선 500년 왕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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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동양 철학

조선 500년 왕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성리학!

성리학은 12세기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한 유교의 주류 학파이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안향이 주자전서를 들여와 연구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파악해

크게 일가를 이룬 이는 백이정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르러 하연, 이언적, 김인후, 기대승, 이이 등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면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여

정신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중시하는 주리설과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고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주기설이 나오게 되었다.

주리설은 영남지방에서 발전하여 영남학파라고 하는데

이언적 이황 류성룡 김성일로 이어졌으며,

주기설은 기호지방에서 발전하여 기호학파라고하며

서경덕 김인후 기대승 성혼 이이에 이르러 완성되었고

김장생 등에게 이어졌다.

 

성리학은 고려 말 충렬왕 때 원나라로부터 안향에 의해 전래되었다.

 

안향 ( 성리학을 고려에 들여온 인물 ) 

안향은 충렬왕 15년 원나라에 들어가

주자전서를 베끼고 공자 주자의 상을 그려 가지고 왔다.

고려 말의 사회풍조는

권문세족(친원세력) 정치를

노불 사상의 지나친 신비주의에 빠져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가의 차원에서 새로운 학풍 진작이 요구되었다..

원나라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적 독립성을 강조하는 데 있어서도

주자학은 윤리적이며 합리적인 차원과 함께

사회 국가적으로 적극적이고

문화적인 활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았다.

 

조선 왕조의 건국은 사회혁명을 가져왔고

이에 수반하여 문명 개혁이 나타났다.

우선 불교를 대신하여

유교 특히 성리학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불교에 대한 비판 운동은 고려 말기부터 일어났지만

개국 후에 이르러서야 불교교리의 핵심이 되는

인과설 윤회설 화복설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여

불교가 허학이고 성리학이 실학이라는 것을

논술한 정도전의 불씨잡변이 저술되었다.

 

조선의 성리학과 고려의 패망 과정 속에서

조선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보호하면서 시작되었다.

고려는 불교를 승상 하는 국가였지만 말기가 되면

승불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고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하였고

불교를 배척하고 조선은 유교 이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조선은 왕조를 건국하기 위해

기존의 불교사상을 뜯어고치고

새로운 왕조를 건립하기 위해 유교를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이리하여 성리학은 조선에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하게 된다.

 

조선을 건국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저술하면서 불교의 폐단을 이야기하였고

이로 인해 승려들은 정치 일선에서 대항할 힘을 잃고

오로지 승려로써 남게 되면서

불교도들이 섰던 자리는 자연스럽게 성리학자들이 대체하게 되며

조선은 유교국가가 된다.

 

정도전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

 

정도전의 후대들이 성리학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입학도설, 오경천견록 등을 저술하면서

더욱 확고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고려 말 성리학이 대두되면서 성리학은 크게 2대 계열로 나누어졌다.

정도전과 정몽주의 이념적 대립 구조

정몽주의 의리 학파와

정도전의 훈구파 계열이다.

 

정몽주의 경우 인간의 내면적 본성을 강조하고

만고불변의 도덕의식을 개발하는데 주안점이 있었던 반면

 

정도전의 인간성의 개발보다는

상황에 대응하는 창조적 변혁을 강조하며

관념적 의리나 도덕보다는 인간의 의지적 연마와 지식의 개발,

그리고 문화 의식을 고취하는데 그 중점을 두었다.

조선 유학사 상사의 정통을 말할 때 정도전 계열보다는

정몽주 계열의 학맥을 연원으로 삼는데 이점이 조선 성리학의 특색이다.

 

정몽주 ( 조선 개국에 반대한 고려말 인물)

정몽주에서 시작된 성리학은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등으로 이어졌고

산림에 근간이 되었다.

 

15~16세기 이황과 이이가 조선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었으며

이황은 기대승과 더불어

이이는 성혼과 더불어

사단칠정에 관한 논변을 통화여

이기성 정론과 인심 도심설 등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한편 내면적 도덕 원리인 인성론은

송익필 김장생 김집 등에 의해 유학의 행동 규범인 예설로 전개되었다.

특히 사단칠정론의 인성에 대한 분석과 변론은

보편적 이념인 성품이 인간과 동물에 있어서 같은가

다른가를 물었던 호락론의 신물 성동이 문제에 관한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 계속 -